은밀한 이혼녀1
작성자 정보
- youtube링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605 조회
-
목록
본문
오래간만에 인사 드리는군요. 마티니 입니다.
요 며칠간 주식에 정신이 팔리다보니 차분하게 글쓸 엄두를 못냈습니다. 그래도 가끔 게시판은 방문하여 여러분들의 글은 잘 보았습니다.
저도 이정도에서 밥값은 해야겠죠.
이번에 들려드릴 얘기는 작년 12월경 겪었던 이혼녀와의 얘기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유없이 기분이 다운되는 경우가 있다. 작년 가을과 겨울 사이가 내겐 아마 그런 시기였나 보다.
왠지 뭘 해도 흥이 안나고 일상생활이 짜증스럽고 그야말로 권태로움이 온 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나날이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그다지 내 처지가 새삼 아쉬울 것도 없었는데 왜 그리 기분이 바닥을 쳤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암튼 그때의 나는 그렇게도 저조했다.
그러던 어느 12월 초순경의 토요일 이었다.
12시에 일찌감치 퇴근을 하고나니 권태감이 더욱 나를 부채질하는걸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일이라도 바쁘면 그런 기분도 안들테지만 오히려 한가한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알고지내는 여자들을 만나고픈 생각도 없었다. 그래봐야 똑같은 분위기에, 똑같은 농담에 별반 다름없을 시간을 보내게 되리란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기분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자극이나 경험이 필요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집에 먼저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평소처럼 전철을 타고 신사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렸다.
아무 생각없이 스산한 바람을 맞아가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왠걸 20분이 지나도록 기다리는 차는 보이질 않았다.
'기분도 꿀꿀한데 차까지 안도와주는군..' 속으로 웅얼거리며 계속 정류장에 서있었는데 토요일 오후의 교통상황을 시범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꽉막힌 도로 어디에도 내가 타려는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갑자기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따라 바람이 무던히도 불었고 나는 거리에 30여분 가까이 가만히 서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어디 까페라도 들어가서 몸을 녹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까페에서 커피 마시는 것도 꼴이 우스운것 같아서 주저할 무렵 눈에 전화방 간판이 들어왔다.
전에 친구와 술을 마시다 호기심으로 가본적은 있지만 별다른 경험을 하지는 않았었다. 1시간 동안 전화 두 통 받아본게 전부였으니까. 게다가 그때 나는 엄청 술에 절었었고..
하지만 그 날은 왠지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혼자 까페에서 궁상 떠는것보다는 모르는 사람하고 부담없는 얘기를 나누는 편이 훨씬 좋을성 싶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집에 숨겨놓은 꽂감이 있는것도 아닌지라 그 길로 그 전화방에 들어갔다.
배정된 방에 들어가니 우선 따뜻해서 좋았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에 이런데나 혼자 오나 싶은 야릇한 자괴감도 마음 한 구석에 들었던게 사실이다.
'어차피 시간 때우러 온거야. 만화 보거나 오락 하는거랑 다를것 전혀 없다.'라고 내 스스로를 다독이며 전화를 기다렸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어린 목소리의 여자가 아르바이트를 하고싶다는 얘기를 했다. 순간 무슨 뜻인가 의아했지만 곧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사실 섹스를 하자면 지금 만나는 애들중에도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었던 만큼 굳이 돈 줘가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나니 전화통이 잠잠해졌다. 토요일 오후는 저화도 쉬는가 보다 싶어 씁쓰레 웃고 있는데 20여분 후에 전화가 왔다.
먼저 서로의 소재지를 물었다. 나는 신사동 이었고 그녀는 산본이었다.
나이를 물어보니 나보다 한 살 어렸다.
그래도 또래의 여자와 통화가 연결된지라 비교적 말이 통하겠다 싶어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댔다.
상대는 목소리로 봐서는 약간 건조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자신이 먼저 대화를 끌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묻는 말에 답하는 정도로 대화에 응했다.
사실 그때는 그럴 마음도 없었고 해서 색깔있는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고 일상적인 말만을 했다. 우습지만 시국에 관한 얘기까지 했던것 같다.
그 상황에서 나에게 중요한건 전혀 모르는 여자와 익명으로 대화를 하는 미묘한 분위기였다.
얼마간 그렇게 얘기를 하다보니 배정된 한시간이 거의 다 되었음을 알게 됐다.
느낌이 좋아 추가금액을 지불하고 더 얘기를 나눌까 생각도 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어찌됐건 돈까지 더 들여가며 전화기를 붙잡는다는게 썩 내키지 않아서였다.
나는 이런 내 생각을 그녀에게 전했고 간단히 통화 즐거웠다는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 그녀가 내 얘기를 듣더니 오후에 시간이 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물론 남는게 시간이었지만 막상 여자 측에서 먼저 애프터를 요청하자 약간 당황스러웠다.
돈과 여자는 쫓아가면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그날의 경우는 마음을 비우고 초연하자 오히려 복이 들어오는 격이었다.
잠깐의 고민 후 나는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무엇보다도 늘 보던 얼굴이 아닌, 미지의 얼굴을 본다는 호기심의 충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시간과 장소는 5시 사당역 부근의 모 커피전문점으로 정했다. 시간을 늦춘 이유는 중간에 그녀가 친구와 약속이 있는 까닭이었다. 알아보는 방법으로는 서로의 인상착의로 확인하기로 하였다.
내 키와 옷차림 등을 설명하자 그녀도 자신의 인상착의를 말해 주었다. 키는 164정도에 회색 투피스와 코트를 입고 있다고 하였다.
전화방을 나오면서 뭔가에 홀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화방에서 그렇게 연결이 된게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쨋건 약속시간까지 내가 전혀 모르는 묘령의 여자를 기다린다는 사실은 내게 색다른 흥분을 안겨주었고 덕분에 침체되었던 내 기분도 상당히 좋아졌다.
물론 그렇게 기대하고 나갔다가 폭탄을 만나면 더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나중 문제고..
우선은 집으로 돌아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에 맞춰서 약속장소로 향했다. 술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를 가져갈지 말지 고민했지만 추운 날씨 덕에 차를 가지고 약속장소로 갔다.
토요일 오후 5시의 사당역은 매우도 번잡했다. 산본에서 오는 그녀의 편의상 사당역으로 장소를 잡은건데 덕분에 오랫만에 그쪽 거리 구경을 하게된 셈이다.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도착해서 부리나케 까페로 들어가니 안에는 세 테이블 정도에만 손님이 있었다. 그중 여자 혼자 있는 테이블이 하나 있었는데 옷차림을 보니 직감적으로 그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앉아있는 관계로 전체적인 실루엣을 판단하기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얼굴만 보자면 꽤 괜찮은 축에 들 성 싶었다.
머리는 커트에 웨이브 파마를 하였고 피부는 깨끗했다. 코는 약간 날카로운 느낌이 들 정도로 오똑하였는데 그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차가운 인상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그녀 앞에 서서 "은선씨 맞으세요?"하고 묻자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자리에 앉아서 차를 주문하고 얘기를 시작했는데 얼마 안가 대화가 끊어졌다. 아직 내가 이런 분위기에 적응이 안된 탓이었나 보다.
조금 뜸을 들이다 물어본 얘기는 어떤 경위로 전화방에 전화를 하게 되었냐는 질문이었다. 사실 그녀의 이미지가 그쪽하고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무심코 생활정보지를 보다가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남아서 그냥 해본거라고 대답했다. 사실 전화방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못했고, 실제로 나와 통화하기 전에 두명과 통화를 했는데 역시나 내용이 불량하게 느껴져 나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점잖게 전화를 하여 한번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남들처럼 만나자고 보채지도 않고 너무도 평범한 얘기만 하니 오히려 신선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즘 지내는게 너무 지루하다고 권태롭다는 말 한 마디에 필이 통했다고 말했다. 자기도 요즘 그렇다면서..
대충 그녀의 얘기를 종합하자면 현재 컴퓨터그래픽 관련 일을 하고 있으며 집은 산본방면, 회사는 안양 쪽이고 혼자서 살고 있다는게 요지였다.
혹시 만나는 남자가 없냐고 묻자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왠지 분위기가 남자한테 한 번 데인 여자같은 느낌을 주었다.
계속해서 그녀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얼마간 호감이 갔다. 아주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같이 다니기에 부끄럽지 않을 수준은 됐고, 나 역시 나랑 유사한 심리상태를 갖고있는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 탓이다.
일단 내 생각이 호감 쪽으로 기울자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산을 해보자는 심산으로 집에는 언제까지 들어가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실망스럽게도 한 시간 후에는 들어가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몇 번을 구슬렸지만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무래도 그날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계로 추후에 그녀를 보기 위해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묻자 그녀는 다소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더 보채지 않고 그녀의 핸드폰을 구경하자며 내게 보여줄것을 요청하였다. 그건 괜찮았는지 선뜻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 주었다. 잘 알다시피 핸드폰을 껐다가 다시 켜면 번호가 찍혀 나오는데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못한 모양이다.
나는 이리저리 만지면서 슬쩍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켰고 그때 나온 번호를 순간적으로 머리에 입력했다.
그런데 핸드폰을 보다보니 두 살 정도 되어보이는 애기 사진이 조그맣게 붙여져 있는걸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말했다. "조카인가 보네요. 귀엽게 생겼네."
그러자 그녀는 "제 아들이예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간만에 그녀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간만에 농담을 내게 던졌는데 의당 장단을 맞춰줘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말을 이었다.
"아들 지금 어딨어요?"
"친정 어머니 댁에 있어요."
"애기 자주 맡기나 봐요."
"예. 직장때문에 평일에 맡기고 주말에 보러 가요."
사실 대화가 이쯤 돼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그녀의 어굴에서 어디고 애엄마라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그녀가 계속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도 일찍 가는거군요?"
"네, 그래요."
나는 좀 더 짓궂게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되게 나쁜 엄마네. 애기 팽게치고 남자나 만나고.."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그녀 얼굴에 베어 나왔다. 곧 이어서 그녀의 앙칼진 말이 입에서 나왔다.
"그래요. 나 나쁜 엄마예요. 그렇다고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어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로 사진 속의 애기가 그녀의 아들이었나 보다.
조금 날카로운 그녀 눈에 눈물까지 비쳤다.
'아차 이런 실수를' 속으로 외쳤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그녀는 떠날 채비를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코트를 걸치기 시작한 것이다.
엉겁결에 나도 같이 일어나 계산을 하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
"죄송해요. 난 은선씨 얼굴 보고 전혀 애엄마일거라는 상상을 못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묵묵부답 이었다.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릴께요. 제 차 타세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저도 차 가지고 왔어요."
그렇다고 이렇게 보내면 이걸로 끝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은 내 명함을 건네주면서 평일에 만나서 영화라도 한편 보자는 말을 하였다. 그녀는 그러마하고 대답하였으나 심드렁한 느낌이었다.
나는 일단 그녀의 옆자리에 타고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아니, 차는 어떡하실려구 여기 타셨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확답을 들어야 가든지 말든지 하죠. 우선 내 사과부터 받아주세요."라고 말하며 그녀를 쏘아보았다.
내 이 말에 그녀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사과 의미로 제가 저녁 살테니 약속 정하죠."라고 말했다.
정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얘기해서인지 그녀는 그러자고 대답했다.
"그럼 화요일 7시에 오늘 만난 곳에서 만나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응답을 받고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정말 궁금한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애엄마라면 남편이 있다는 얘긴데..'하는 생각이 머리를 돌았고 나는 곧 돌려서 그녀에게 질문했다.
"늦게 들어온다고 애아빠가 뭐라 안해요?"
그러자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 이혼했어요." 그리고는 "오늘은 이만 보고 화요일날 다시 봐요."라고 이어서 말했다.
그쯤에서 나는 그녀와 작별을 고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대화를 곰곰히 복기해 보았다.
사실 조금만 신경 썼으면 쉽게 추론할 수 있는 내용들을 대화중 많이 놓친것 같았다. 덕분에 그녀를 노엽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쨌건 내 앞에 새로운 경험이 다가오리라는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요 며칠간 주식에 정신이 팔리다보니 차분하게 글쓸 엄두를 못냈습니다. 그래도 가끔 게시판은 방문하여 여러분들의 글은 잘 보았습니다.
저도 이정도에서 밥값은 해야겠죠.
이번에 들려드릴 얘기는 작년 12월경 겪었던 이혼녀와의 얘기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유없이 기분이 다운되는 경우가 있다. 작년 가을과 겨울 사이가 내겐 아마 그런 시기였나 보다.
왠지 뭘 해도 흥이 안나고 일상생활이 짜증스럽고 그야말로 권태로움이 온 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나날이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그다지 내 처지가 새삼 아쉬울 것도 없었는데 왜 그리 기분이 바닥을 쳤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암튼 그때의 나는 그렇게도 저조했다.
그러던 어느 12월 초순경의 토요일 이었다.
12시에 일찌감치 퇴근을 하고나니 권태감이 더욱 나를 부채질하는걸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일이라도 바쁘면 그런 기분도 안들테지만 오히려 한가한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알고지내는 여자들을 만나고픈 생각도 없었다. 그래봐야 똑같은 분위기에, 똑같은 농담에 별반 다름없을 시간을 보내게 되리란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기분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자극이나 경험이 필요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집에 먼저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평소처럼 전철을 타고 신사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렸다.
아무 생각없이 스산한 바람을 맞아가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왠걸 20분이 지나도록 기다리는 차는 보이질 않았다.
'기분도 꿀꿀한데 차까지 안도와주는군..' 속으로 웅얼거리며 계속 정류장에 서있었는데 토요일 오후의 교통상황을 시범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꽉막힌 도로 어디에도 내가 타려는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갑자기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따라 바람이 무던히도 불었고 나는 거리에 30여분 가까이 가만히 서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어디 까페라도 들어가서 몸을 녹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까페에서 커피 마시는 것도 꼴이 우스운것 같아서 주저할 무렵 눈에 전화방 간판이 들어왔다.
전에 친구와 술을 마시다 호기심으로 가본적은 있지만 별다른 경험을 하지는 않았었다. 1시간 동안 전화 두 통 받아본게 전부였으니까. 게다가 그때 나는 엄청 술에 절었었고..
하지만 그 날은 왠지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혼자 까페에서 궁상 떠는것보다는 모르는 사람하고 부담없는 얘기를 나누는 편이 훨씬 좋을성 싶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집에 숨겨놓은 꽂감이 있는것도 아닌지라 그 길로 그 전화방에 들어갔다.
배정된 방에 들어가니 우선 따뜻해서 좋았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에 이런데나 혼자 오나 싶은 야릇한 자괴감도 마음 한 구석에 들었던게 사실이다.
'어차피 시간 때우러 온거야. 만화 보거나 오락 하는거랑 다를것 전혀 없다.'라고 내 스스로를 다독이며 전화를 기다렸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어린 목소리의 여자가 아르바이트를 하고싶다는 얘기를 했다. 순간 무슨 뜻인가 의아했지만 곧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사실 섹스를 하자면 지금 만나는 애들중에도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었던 만큼 굳이 돈 줘가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나니 전화통이 잠잠해졌다. 토요일 오후는 저화도 쉬는가 보다 싶어 씁쓰레 웃고 있는데 20여분 후에 전화가 왔다.
먼저 서로의 소재지를 물었다. 나는 신사동 이었고 그녀는 산본이었다.
나이를 물어보니 나보다 한 살 어렸다.
그래도 또래의 여자와 통화가 연결된지라 비교적 말이 통하겠다 싶어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댔다.
상대는 목소리로 봐서는 약간 건조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자신이 먼저 대화를 끌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묻는 말에 답하는 정도로 대화에 응했다.
사실 그때는 그럴 마음도 없었고 해서 색깔있는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고 일상적인 말만을 했다. 우습지만 시국에 관한 얘기까지 했던것 같다.
그 상황에서 나에게 중요한건 전혀 모르는 여자와 익명으로 대화를 하는 미묘한 분위기였다.
얼마간 그렇게 얘기를 하다보니 배정된 한시간이 거의 다 되었음을 알게 됐다.
느낌이 좋아 추가금액을 지불하고 더 얘기를 나눌까 생각도 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어찌됐건 돈까지 더 들여가며 전화기를 붙잡는다는게 썩 내키지 않아서였다.
나는 이런 내 생각을 그녀에게 전했고 간단히 통화 즐거웠다는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 그녀가 내 얘기를 듣더니 오후에 시간이 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물론 남는게 시간이었지만 막상 여자 측에서 먼저 애프터를 요청하자 약간 당황스러웠다.
돈과 여자는 쫓아가면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그날의 경우는 마음을 비우고 초연하자 오히려 복이 들어오는 격이었다.
잠깐의 고민 후 나는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무엇보다도 늘 보던 얼굴이 아닌, 미지의 얼굴을 본다는 호기심의 충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시간과 장소는 5시 사당역 부근의 모 커피전문점으로 정했다. 시간을 늦춘 이유는 중간에 그녀가 친구와 약속이 있는 까닭이었다. 알아보는 방법으로는 서로의 인상착의로 확인하기로 하였다.
내 키와 옷차림 등을 설명하자 그녀도 자신의 인상착의를 말해 주었다. 키는 164정도에 회색 투피스와 코트를 입고 있다고 하였다.
전화방을 나오면서 뭔가에 홀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화방에서 그렇게 연결이 된게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쨋건 약속시간까지 내가 전혀 모르는 묘령의 여자를 기다린다는 사실은 내게 색다른 흥분을 안겨주었고 덕분에 침체되었던 내 기분도 상당히 좋아졌다.
물론 그렇게 기대하고 나갔다가 폭탄을 만나면 더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나중 문제고..
우선은 집으로 돌아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에 맞춰서 약속장소로 향했다. 술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를 가져갈지 말지 고민했지만 추운 날씨 덕에 차를 가지고 약속장소로 갔다.
토요일 오후 5시의 사당역은 매우도 번잡했다. 산본에서 오는 그녀의 편의상 사당역으로 장소를 잡은건데 덕분에 오랫만에 그쪽 거리 구경을 하게된 셈이다.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도착해서 부리나케 까페로 들어가니 안에는 세 테이블 정도에만 손님이 있었다. 그중 여자 혼자 있는 테이블이 하나 있었는데 옷차림을 보니 직감적으로 그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앉아있는 관계로 전체적인 실루엣을 판단하기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얼굴만 보자면 꽤 괜찮은 축에 들 성 싶었다.
머리는 커트에 웨이브 파마를 하였고 피부는 깨끗했다. 코는 약간 날카로운 느낌이 들 정도로 오똑하였는데 그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차가운 인상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그녀 앞에 서서 "은선씨 맞으세요?"하고 묻자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자리에 앉아서 차를 주문하고 얘기를 시작했는데 얼마 안가 대화가 끊어졌다. 아직 내가 이런 분위기에 적응이 안된 탓이었나 보다.
조금 뜸을 들이다 물어본 얘기는 어떤 경위로 전화방에 전화를 하게 되었냐는 질문이었다. 사실 그녀의 이미지가 그쪽하고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무심코 생활정보지를 보다가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남아서 그냥 해본거라고 대답했다. 사실 전화방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못했고, 실제로 나와 통화하기 전에 두명과 통화를 했는데 역시나 내용이 불량하게 느껴져 나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점잖게 전화를 하여 한번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남들처럼 만나자고 보채지도 않고 너무도 평범한 얘기만 하니 오히려 신선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즘 지내는게 너무 지루하다고 권태롭다는 말 한 마디에 필이 통했다고 말했다. 자기도 요즘 그렇다면서..
대충 그녀의 얘기를 종합하자면 현재 컴퓨터그래픽 관련 일을 하고 있으며 집은 산본방면, 회사는 안양 쪽이고 혼자서 살고 있다는게 요지였다.
혹시 만나는 남자가 없냐고 묻자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왠지 분위기가 남자한테 한 번 데인 여자같은 느낌을 주었다.
계속해서 그녀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얼마간 호감이 갔다. 아주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같이 다니기에 부끄럽지 않을 수준은 됐고, 나 역시 나랑 유사한 심리상태를 갖고있는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 탓이다.
일단 내 생각이 호감 쪽으로 기울자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산을 해보자는 심산으로 집에는 언제까지 들어가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실망스럽게도 한 시간 후에는 들어가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몇 번을 구슬렸지만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무래도 그날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계로 추후에 그녀를 보기 위해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묻자 그녀는 다소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더 보채지 않고 그녀의 핸드폰을 구경하자며 내게 보여줄것을 요청하였다. 그건 괜찮았는지 선뜻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 주었다. 잘 알다시피 핸드폰을 껐다가 다시 켜면 번호가 찍혀 나오는데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못한 모양이다.
나는 이리저리 만지면서 슬쩍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켰고 그때 나온 번호를 순간적으로 머리에 입력했다.
그런데 핸드폰을 보다보니 두 살 정도 되어보이는 애기 사진이 조그맣게 붙여져 있는걸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말했다. "조카인가 보네요. 귀엽게 생겼네."
그러자 그녀는 "제 아들이예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간만에 그녀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간만에 농담을 내게 던졌는데 의당 장단을 맞춰줘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말을 이었다.
"아들 지금 어딨어요?"
"친정 어머니 댁에 있어요."
"애기 자주 맡기나 봐요."
"예. 직장때문에 평일에 맡기고 주말에 보러 가요."
사실 대화가 이쯤 돼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그녀의 어굴에서 어디고 애엄마라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그녀가 계속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도 일찍 가는거군요?"
"네, 그래요."
나는 좀 더 짓궂게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되게 나쁜 엄마네. 애기 팽게치고 남자나 만나고.."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그녀 얼굴에 베어 나왔다. 곧 이어서 그녀의 앙칼진 말이 입에서 나왔다.
"그래요. 나 나쁜 엄마예요. 그렇다고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어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로 사진 속의 애기가 그녀의 아들이었나 보다.
조금 날카로운 그녀 눈에 눈물까지 비쳤다.
'아차 이런 실수를' 속으로 외쳤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그녀는 떠날 채비를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코트를 걸치기 시작한 것이다.
엉겁결에 나도 같이 일어나 계산을 하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
"죄송해요. 난 은선씨 얼굴 보고 전혀 애엄마일거라는 상상을 못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묵묵부답 이었다.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릴께요. 제 차 타세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저도 차 가지고 왔어요."
그렇다고 이렇게 보내면 이걸로 끝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은 내 명함을 건네주면서 평일에 만나서 영화라도 한편 보자는 말을 하였다. 그녀는 그러마하고 대답하였으나 심드렁한 느낌이었다.
나는 일단 그녀의 옆자리에 타고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아니, 차는 어떡하실려구 여기 타셨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확답을 들어야 가든지 말든지 하죠. 우선 내 사과부터 받아주세요."라고 말하며 그녀를 쏘아보았다.
내 이 말에 그녀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사과 의미로 제가 저녁 살테니 약속 정하죠."라고 말했다.
정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얘기해서인지 그녀는 그러자고 대답했다.
"그럼 화요일 7시에 오늘 만난 곳에서 만나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응답을 받고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정말 궁금한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애엄마라면 남편이 있다는 얘긴데..'하는 생각이 머리를 돌았고 나는 곧 돌려서 그녀에게 질문했다.
"늦게 들어온다고 애아빠가 뭐라 안해요?"
그러자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 이혼했어요." 그리고는 "오늘은 이만 보고 화요일날 다시 봐요."라고 이어서 말했다.
그쯤에서 나는 그녀와 작별을 고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대화를 곰곰히 복기해 보았다.
사실 조금만 신경 썼으면 쉽게 추론할 수 있는 내용들을 대화중 많이 놓친것 같았다. 덕분에 그녀를 노엽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쨌건 내 앞에 새로운 경험이 다가오리라는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